3.
-톡톡.
또 시작이다.
타자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사무실에서 혼자 저 거슬리는 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은 굳이 누군지 알아 볼 필요도 없다. 미간 사이로 신경을 잔뜩 구긴 채, 옆 자리에 앉아있는 그를 흘끗 쳐다보지만 그는 이곳을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골몰히 생각에 잠겨있다.
-톡톡톡.
세 번.
-톡톡톡.. 톡톡
다섯 번.
...이젠 세고 있는 내가 더 바보 같다. 확실한 건, 그 소리를 세고 있을 만큼 난 저 소리가 무척이나 거슬린다는 것이다.
"이호경 씨. 거, 두드리는 것 좀 그만합시다."
...라고 팀장님이 말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팀장님은 아예 듣지도 못한 것 같다. 아무래도 이 소리는 나밖에 안 들리는 모양이다. 펜으로 살짝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에 파묻혀 사라져 버린다.
나밖에 들을 수 없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가 바로 옆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지난 주에 우리 편집부에 입사한 수습이다. 나보다 나이는 많다. 하지만 제대한 후 졸업을 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내게는 1년 아래의 부하직원인 셈이다. 하지만 내가 위라고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왜냐면 이 사람은 나의 대학교 선배이기 때문이다. 같은 과 선배는 아니었지만 같은 문예동아리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바로 윗 선배나 다름없었다. 다른 학교를 다니다 이 학교 문창과로 다시 시험을 쳐서 들어왔다는데, 그래서인지 나이도 재수해 들어온 나보다 세 살 많았다. 그랬던 사람이 부하로, 그것도 옆자리에 들어와 앉아있으니, 마음이 편할 리 만무하다. 거기다 제일 문제는 역시나….
시끄러워! 거슬린단 말이다! 자각 못했던 시계의 초침소리를 자각하듯, 한번 들리기 시작한 소리는 점점 선명하게 내 귀를 자극 할 뿐이다. 몇 번을 한마디 하려다 참았다. 한 번은 몸까지 틀어서 그 남자를 노려봤지만 그는 전혀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 의사는 전달된 적이 없었다. 이런 작은 습관에 화내는 내가 너무 쪼잔 해 보이기도 하고 지치기도 해서 신경 쓰지 않아보려 노력했지만, 역시나 한번 자각한 그 소리를 모른 척 하기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난 최후의 대응책을 생각 해 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준비해온 MP3의 볼륨을 높였다. 이제 그 거슬리는 소리에 짜증이 날 이유도 없겠지. 이것으로 해결이다! …라고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다. 귀를 막고 있다가 팀장님이 부르는 소리를 못 들어서 된통 혼이나고 이어폰은 금지 당했다. 정말 일이 안 풀려도 이렇게 안 풀릴수가.
“은하씨 듣고 있어요?”
“예?”
놀라서 뒤를 돌아본다. 팀장님이 팔짱을 고쳐 끼며 한숨을 쉰다.
“지금 얘기 들었어요?”
“…아뇨 죄송합니다.. 무슨 얘기였죠?”
“오늘 회식 괜찮아요? 시간되죠? 혹시 무슨 약속 있어요?”
“아.. 네 약속은 없는데요…”
“그간 우리 계속 겹마감 넘기느라 몇 달째 회식 못했잖아요. 이번에 마감 일찍 끝났으니 오늘 회식하고 내일 다같이 쉬자구요.”
“아, 네.”
“그럼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나마 위안이 되는 소리군. 이라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한숨 소리가 컸는지 그가 날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래 봐라 봐. 눈치 좀 채라. 당신 때문에 이렇게 한숨이 나는 거라고.
회식은 3차까지 이어졌다. 내일 쉰다는 생각에선지 다들 있는대로 마셔대고 있다. 술에 약한 몇몇은 이미 나가 떨어진 지 오래다. 1차에 뻗은 녀석들을 부축해 2차까지 끌고 갔다가 자정이 가까워지자 안되겠다 싶어서 택시를 태워 돌려보냈다. 3차는 이미 고래들만 남은거다 고래. 자정을 넘긴지 이미 세시간 째. 슬슬 더 이상은 술이 받질 않는다. 그만 마셔야지. 이제부턴 물만 마셔도 취할 것 같은걸. 아직도 팔팔한 몇몇은 자기 숟가락과 잔을 챙겨 들고 자리를 바꿔 돌아다니며 수다를 떨고 있다. ...지독한 것들. 그렇게 마셔놓고 아직도 기운이 넘치네. 누가 그 동네 아니랠까봐….
일하는 곳이 일하는 곳인 만큼 이곳에는 문과생들이 많다. 문과생의 하루는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법. 수업을 들을 수 없을 만큼 떡이 돼서 다음날 수업을 못나가도 괜찮다. 그럴 땐 그냥 교수까지 끌어들여 떡을 만들면 된다. ....라고 누가 말했더라…. 사실 난 경제학부였기 때문에 문과 쪽은 모르겠다. 경제학부도 만만치 않은 인간들이지만 문과생들의 하루에 대해 들은 건 적어도 그 팀 사이에서는 아녔다. 어디였더라.. 그래. 그게 바로 저 인간, 이호경이 가르쳐준 얘기였다. 문예동아리에서 술푸다 들은 얘기였다.
누군가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눈이 가물가물해서 누군지도 오락가락한다. 빤히 쳐다봤다. 유난히 크고 높은 코. 그리고 은근히 큰 체격. 눈이 가물가물해도 이런 인상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지. 이호경.
“이 코쟁이!”
첫말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곤 이내 뭐가 웃긴지 손가락으로 미간을 눌러가며 웃기 시작했다.
“뭐야, 못 알아보는 줄 알았더니 알고 있었잖아”
“흥, 코쟁이. 자기도 아는 척 안 했으면서.”
코쟁이는 내가 문예동아리에 있을 때 그에게 붙였던 별명이다. 옆모습만 보면 정말로 서양인 같았다. 하얀 얼굴에 도드라진 높은 코가 인상적이어서 난 그를 툭하면 코쟁이라고 불렀다. 내가 이 말을 할 때마다 그는 인신공격이라며 너무하다며 오버액션을 취했었다. 사람 외모 갖고 놀리는 거 아니랜다. 그때마다 난 무시하는 척 했지만 사실 그건 그다지 놀릴 생각으로 한 소린 아녔다.
잘 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대로 말해줄 만큼 나의 아량은 넓지 않았기 때문에 비꼬여 나온 말. 그저 심술이었을 뿐이지.
“난 니가 나 까먹은 줄 알았지.”
“왜.”
“사실 뭐 우리 같이 논거 1년도 안되잖아. 이제 와서 같은 동아리였다고 직장에서 아는 척 하는 것도 웃기잖아. 같은 과도 아니고..”
“그게 뭐가 웃겨.”
“넌 안 웃겨?”
“응”
“그럼 됐고.”
그러고 보니 같은 동아리였다 해도 함께 어울렸던 시간은 정말로 짧았다. 내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 그는 3학년이었고, 4학년이 되기 전 휴학계를 내곤 군대를 가버렸다. 그리고 난 그가 복학하기 전에 졸업을 했다.
그래도 이렇게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도 그의 특이한 외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 좀 관심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인간에게만큼은 그런 내 마음을 알게 하기가 싫어서 더 심술을 부렸던 것 같다.
분명히 할 말은 많아야할텐데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히 모두 웃고 떠들고 있는데 왠지 이곳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런 기분이다.
“…천사 지나간다.”
“천사?”
“전에 형이 말했잖아. 아무도 말없으면 천사가 지나가는 거래며.”
“아아-“
그는 피식 웃더니 담배를 한 개피 꺼내더니 입에 문다. 불을 붙이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 형 근데 왠 말보루야. ”
“ 음? ”
“ 옛날엔 멘솔 이었잖아. ”
“ 짜식이 별걸 다 기억하네 ”
“ 그러게? ”
“ 걍 바꿨어. 그닥 상쾌하지도 않더만. ”
“ 왜, 인생이 써서? ”
“ 시끄러워 임마. 하여간 한마디도 안 지고 거든다니까. ”
그는 담뱃재를 털며 구박을 했다.
왠지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덕분에 마치 이곳이 동아리모임 같은 기분이 들어서인지 가슴이 아렸다. 그래. 추억이지. 좋은 추억이었지. 그도 말이 없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만 다른 공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아 그때 진짜 즐거웠었는데”
“즐거웠어? 하도 구박만 하길래 싸우러 술자리에 오는 줄 알았더만”
“거참 그런 건 애교로 넘길 수 없어?”
피다 만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받아 친다.
“넘길게 따로 있지”
그는 나른하게 웃으며 들고 있던 라이터로 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톡톡톡
그 소릴 듣자 가물가물 내려앉던 눈꺼풀이 번쩍 떠지는 기분이 들었다.
“ 그래 그거! ”
“ 응? ”
“ 그거 말야. 자꾸 툭툭거리는 거. ”
“ 아… 이거? 왜? ”
“ 하지 좀 마 진짜 거슬려. 것 땜에 일할 때 얼마나 신경 쓰이는 줄 알아? ”
“ 아, 미안. 들렸냐? 말하지 ”
“ 어떻게 말을 해. 아는 척도 못해봤었구만. ”
“ 다들 거슬렸겠네.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
“ 다른 사람들은 못 들었나 봐. ”
“ 그럼 너만? ”
“ 응. 그래서 미치겠던데 ”
그는 뭔가 웃음을 참고 있는 듯 했다. 입술을 우물거리며 장난끼 서린 눈으로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
“뭐가 그렇게 웃겨.”
“응? 내가 뭘?”
“지금 웃긴 거 참고 있는 거 다 보여. 비웃는 거지!”
“응?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뭔데”
그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애써 손으로 달싹이는 입을 가리며 눈을 피한다.
“왜 내가 이걸 자꾸 상에다 두드리는지 알려줄까.”
“왜 그러는데.”
“사실 난 깐따삐아 별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제대로 말 안 하면 화낸다.”
내 말에 그는 왠지 웃음이 점점 가시는지 이내 차분해졌다. 그리곤 다시 담배를 한 개비 물고는 또 불을 붙여서 한 모금을 깊이 빨아 뱉었다.
“음..그러니까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말이지.”
“응”
그는 조금 머뭇거리며 말을 고르는 듯 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왠지 이번엔 제대로 된 얘기가 나올 것 같아서다.
“나 군대 가기 전엔 이런 버릇이 없었잖아.”
“응 그랬던 것도 같고.”
“군대에서 생긴 버릇인데 말이지.”
“응.”
“들어가서 알게 된 친한 놈이 하나 있었어.
….둘이 참 많이 딴짓도 하고 했는데 그때 서로 망봐주면서 생긴 암호거든”
“헤에..”
“근데 그 녀석이… 그때 그 해 여름에 죽었어..”
“어? 왜?”
“거 너도 가끔 뉴스 보면 나오잖아. 총기사고 이런 거.”
“…아… 응”
“그런 걸로 죽었는데…. 참 불쌍하게 죽었지… 근데 두드리다 보면 그 녀석 생각이 나서…”
“…아..”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또 말없이 라이터를 두드린다. 난 그런 그를 엄청나게 진지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은.. 앞으론 두드린다고 뭐라 하지 말아야겠네.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괜히 말 꺼내게 만들어서 생각나게 해버린 건가.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내내 슬픈 듯 라이터를 두드리던 그는 점점 입 끝이 올라가더니 결국 폭소를 터뜨린다. 순간 아차 싶었다. 그 태도를 보는 순간, 그제서야 그와 함께 했던 과거의 수많은 전적이 생생히 기억나기 시작했다. 얼굴이 화끈 하고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 기억났다. 그는 뻥쟁이였다. 그것도 내 전속의.
유난히 그는 나를 속여먹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니 내가 그렇게 구박해대고 심술을 부렸었지. 다른 사람에겐 그렇게까지 작정하고 골려 먹지 않는 주제에 유난히 나에게는 트루먼 쇼를 방불케 하는 사기극을 펼쳤다. 더 슬픈 건 난 그의 연기에 정말 지치지도 않고 속아넘어가줬다는 거다.
정말 난 어찌 그리 잘 속았 던 건지. 순진했던 걸까. 아니, 이제 와서니까 인정하건대 난 그냥 바보였던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렇게나 매일같이 속고 난 후 화내고 때리면서도 그런 트루먼 쇼를 반복했을 리가 없다.
…아니면 아마도, 난 그가 ‘나에게만’ 부리는 심술이 내심 기뻤을 지도 모른다. 은하만큼 놀리면 반응이 재미있는 사람이 없다며 환하게 웃는 그를 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구실을 이용해 괜시리 남들에게 친함을 과시하고 싶어서 심술을 부리고 화를 냈던 걸지도 모른다. 다 지난 일이지만 서도, 괜히 다시 내 눈앞에서 같은 장난을 치고 있는 그를 보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게다가 왠지 그때는 없던 감정이 느껴져 약간 서글퍼졌다. 지금은 그때가 아니고, 이곳은 동아리 방이 아니고, 더 이상 이런 장난 또한 그와 나의 친분과시가 될 리는 없다는 사실이.
왠지 그냥 슬퍼졌다. 술기운 탓이라고 애써 정당화 시키며 말없이 눈을 내려 깔고 있는 날 보며 그는 웃음을 멈추었다. 그도 아마 느낀걸 거다. 그때와는 다르다는 걸.
또 한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더 이상 형 아우라 부르며 치고 받던 대학생들이 아니다. 사회로 나온 우리 둘은 선 후배가 아닌 직장 동료이고, 직장의 선 후배이고... 그리고 직장인이 된 남녀일 뿐이라는 것. 그 생소함에 서글픔이 밀려왔다. 짝사랑이었지만 든든했던 그 사람이 왠지 정말로 멀어진 것만 같았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무거운 침묵을 깨고 그가 입을 열었다.
“ 놀려서 미안해, 그러니까 이건 말이지.”
“응.”
나름 분위기를 환기시켜보려 말을 이어가는 그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말하는 거야. 말.”
“말?”
“그러니까. 말로 하면 다 들리잖아. 근데 말로는 못하겠고 할 때 나도 모르게 두드리게 되는 거야.
근데 이게 참 재밌는 게, 그냥 두드리고 있을 뿐인데 억양이나 말투가 느껴지지 않아? 두드리는
소리에서?”
“글쎄..”
“어떤 생각을 담아서 두드리면 그 소리가 그 말과 똑 같은 소리를 내더라구… 나만 그런가?”
“나 참, 누가 형 문창과 아니랄까봐 시를 쓰셔.”
“아니 정말이라니까? 해볼 테니까 잘 들어봐”
그는 나보고 귀를 가까이 대라는 듯한 시늉을 하며 소주잔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톡톡톡.
제법 둔탁하다. 듣고 보니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혹시 이건…
“코쟁이?”
그는 뭔가 굉장히 승리에 가득 찬듯한 얼굴로 신이 나서 말했다.
“거봐, 들리잖아”
“…정말 맞았어? 아무렇게나 둘러대는 게 아니고?”
“맞다니까- 그럼 이거 맞춰봐”
-톡 톡 톡
“음….문창과.”
“이야, 신기하네. 어떻게 맞췄어.”
“형이 문창과 발음할 때 이런 식으로 하잖아. 좀 그 단어만 느린 듯.. 형 혹시 혀 짧아?”
“시끄러워. 이 녀석은 왜 말끝마다 인신공격이야 인신공격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제법 신난 것 같다. 그럴만도 하다. 솔직히 나도 신기하니까. 하지만 그건 아마도 정말로 소리에 말이 담겨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내가 그만큼 그의 말투와 행동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 한마디 한마디 대화를 더해갈수록 내가 저 인간을 얼마나 짝사랑했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괜시리 씁쓸해진다.
-톡.톡.톡.
음? 음절이 낯설다. 뭐, 앞의 문제에서도 긴가민가해서 틀린 것도 많았지만 이번 문제는 유난히 생소하다. 분명히 그에게선 한번도 들어보지 않았던 말임이 틀림없다.
끊어지듯 분명한 이 음절. 뭘까. 음... 이건 필시…
“일.좀.해.”
말해놓고 승리를 예감했다. 그러고도 남을 인간. 분명히 또 놀리는 거다.
그는 푸하핫 소리를 내며 큰소리로 웃었다. 그 행동만 봐도 그에게 얼마나 내 반응이 의외였는지를 알게 해 준다. 왠지 다시 기분이 상하는걸.
“왜 또 웃어.”
“아냐. 너 진짜 재밌다.”
“뭔데-“
“됐어. 그만하자, 너무 웃겨서 안되겠다.”
“아 뭔데-“
“안 가르쳐 줘.”
“아 진짜-!”
큰 손이 머리를 쓰다듬어온다. 이건 분명히 대충 얼버무리려는 속셈이다. 치사하긴. 하지만 일단 그가 정말로 말해줄 생각이 없는 건 종일 추궁해봤자 성과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냥 순순히 포기한다. 이런 일에 삐지고 물고늘어져봤자 나만 지치지 득 될 건 없다는 것이 지난 1년간 그와 지내며 얻은 결론이다.
화내고 흥분하고 열 내다 보니 어느새 취기에 잠이 쏟아진다. 에이 모르겠다 싶어서 엎드려버렸다.
“야야, 넌 형이랑 얘기하다가 그렇게 갑자기 자면 어떡하냐.”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여기서 다시 고개를 들어봤자 정말로 더 이상은 무슨 얘길 해야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서다. 내가 대답이 없자 그는 계속 말을 붙인다.
“너 안경은 벗고 자던가. 여자애가, 안경자국 눌리면 어쩌려고.”
“……..”
“너 안경 찌그러진다?”
“……”
더 이상 반응이 없는 나를 보며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른 자리로 갈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내 귓가로 나지막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좀 자의식을 과잉으로 소지 해 보는 것도 좋겠다.”
뭔 소린지. 거기다 무슨 뜻인지 고민해 볼 틈도 없이 그 한마디는 졸음에 밀려 깨끗이 사라져간다. 그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자리에서 떠나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톡.톡.톡.
다시 한번 소주잔이 세 번 테이블에 가볍게 부딪힌다.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난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