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를 졸업한지 몇 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친구가 죽었다. 아니, 자살했다. 친구가 죽은 날은 비가 세차게 내리던 여름이었다.
그녀는 자살하던 날, 죽기 전에 우리 집에 찾아왔었다.
그날, 난 깜깜한 방에 엎어져 선잠을 자고 있었다. 세차게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를 들으며 누워있는데 벨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스스 몸을 일으키며 자기 전 던져두었던 안경을 찾았다.
안경을 쓰며 느릿느릿 현관문으로 나갔을 때, 문 앞에는 뜻밖의 인물이 서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름이었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에 얼떨결에 나는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상대방은 그다지 안녕해보이진 않았다.
이 폭우를 고스란히 맞으며 달려왔는지 그녀의 몸은 흠뻑 젖어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표정이 너무나도 복잡해서 웃을 건지, 울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얼굴을 하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아름이는 대뜸 꽃다발 한 아름을 내밀었다.
너무나 뜬금없었기 때문에 나는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내가 이 꽃다발을 받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 그 꽃다발을 얼른 전해 받았다. 그리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내 말을 들은 아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웃기 시작했다. 기뻐서 웃는 건지 슬퍼서 웃는 건지, 기뻐서 우는 건지, 슬퍼서 우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모습으로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는 집에 들어오란 말도 하기 전에 그녀는 떠나버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가 '그 날' 자살했다고.
그리고 '그 날' 아름이는 그녀에게도 한 아름의 꽃다발을 건넸다는 말도 들었다.
나와 윤영이, 그리고 아름이는 여고시절 단짝으로 죽네 사네 하는 베스트프랜드 들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가서 과제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또는 나름대로의 바쁜 일을 하며 달려오다 보니 단 한 번도 연락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친구들이었다.
그리하여 나와 윤영이는 아름이의 죽음을 계기로 3년 만에 만나게 됐다. 약속한 커피숍으로 나온 그녀는 오랜만에 봐서인지 정말 낯설게 느껴졌다.
화장을 하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윤영이는 내가 모르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무심한 듯, 할 말 다하는 또박또박 정확한 성격만큼은 여전했다. 그런 모습이 3년 만에 만난 그녀를 낯설게 느끼지 않을 수 있게 해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잠시 다른 얘기를 하던 도중 윤영이는 마침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냈다.
"꽃다발 몇 송인지 세 봤어?"
"아니."
"스물 두 송이야."
"근데?"
"네가 받은 꽃다발도 스물 두 송이일걸?"
윤영이의 말에 나는 기억을 더듬어본다.
"음..그럴 것 같다 대충."
윤영이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묻는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응? 모르겠는데?"
"둔한 녀석."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뭔데?"
정말로 답답하다는 듯 윤영이는 날 흘겨본다.
"너 몇 살이야."
"스물 두 살."
"이제 알겠어?"
"...아.."
그 꽃다발의 꽃들은 내 나잇수와 같았다.
내 나이. 어째서 내 나이만큼의...?
고민하는 날 보며 윤영이는 답답한 듯 말을 던졌다.
"그날 걔 생일이었어."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뭐? 난 몰랐는데?
걔 자기생일 물어봐도 안 가르쳐줬잖아."
"그렇다고 정말 3년간 다시 안 물어본 너도 참 너고."
"넌 어떻게 알았는데? 따로 물어봤어?"
"아니.. 생활기록부 정리하다 알았어."
윤영이는 창밖을 바라보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한다.
항상 느끼지만 정말로 차분하다. 차갑게 느껴질 정도다.
자신의 얘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 내성적인 아름이었다. 그저 내 얘기에 웃어주고 내가 치는 장난을 받아주었을 뿐인 그녀에 대해, 난 알려고도 해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내 생일선물을 준비해온 그녀에게 난 생일이 언제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아름이는 별로 말해주고 싶지 않은 듯 얼버무렸다. 어차피 자신의 생일은 방학 중에 있어서, 친구들과는 챙길 기회가 오지 않는다며 말을 돌렸고, 내 성격이 그렇듯 그 뒤에 다시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넌.."
내가 말을 꺼내자 윤영이가 고개를 돌려 날 바라봤다.
"넌 알고 있으면서 왜 나한테 말 안했어?"
당연한걸 뭐 하러 묻냐는 듯 그녀가 대답한다.
"안 물어봤잖아."
황당해진 나는 따진다.
"안 물어보면 안 가르쳐주는 거야? 그럼 넌 왜 아는데 안 챙겼어?"
"챙겨야했어? 걔한테 물어봐서 안 것도 아닌데? 생활기록부 뒤지다 알았다고 말하리?"
"...그건.."
"하긴, 너라면 어떻게 알았건 그러고도 남았겠지"
"....."
할 말이 없었다.
그래, 나라면 그러고도 남았겠지. 그리고 윤영이 또한 저러고도 남을 성격이었지.
하지만 변함없이 차가운 모습이 너무 얄밉기만 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가 죽었는데...
"너 너무 매정해."
"나 전에도 이랬잖아. 왜 이번에만 매정한데."
"그치만... 아름이가 죽었다고..."
"걔가 죽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제 와서 나쁜 게 되는 거야?"
".....아니.."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렇다. 윤영이는 한숨을 쉰다.
"넌 항상 그래. 너무 감정적으로 굴어."
...그 말도 맞다.
"그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애가 죽었는데, 안 미안해?"
"썩 기분이 좋은 건 아니지만 걔가 죽어서 내가 미안해해야하나?
그럼 넌 걔가 안 죽었으면 안 미안해?"
"......."
할 말이 없다.
"그게 감정적이라는 거야. 그때그때 상황에 휩쓸려서 잘잘못을 감정으로 판단하고 있잖아."
"....미안해"
풀이 죽은 날 보며 윤영이는 질렸다는 얼굴로 바라본다.
"사과는 왜 해."
"그치만.. 잘못했잖아..."
"뭘,"
"....."
더더욱 할 말이 없어졌다.
사과할 것이 없다. 윤영이에게도, 아름이에게도.
하지만 잘못한 게 없다며 잊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아니다.
뭘까. 이 앙금은...
대체 이 기분은 무엇 때문일까.
윤영이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마도 아름인 너의 그런 점을 좋아했겠지."
"....어떤 점?"
"...글쎄...."
윤영이는 대답 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침묵이 꽤나 길게 느껴진다. 커피숍에 흘러나오는 노래가 들린다. 그렇게나 크게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난 윤영이와 대화하면서 노래가 흐르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우리한테 연락이 온건지는 들었어?"
"..으응......"
아름이는 부모님이 안계셨다. 할머니와 둘이 사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근데 할머니가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름이에게는 가족이나 친척이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아름이의 죽음은 아름이의 핸드폰에 저장이 돼 있었던 우리에게로 통보되었던 것이다.
아름이와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남자가 전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그렇다.
"...왜...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
"...알았더라면 좀더..."
".....안다고 변하는 건 없었어."
".......응"
아름이는 사실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가 아름이의 사정을 좀 더 알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아..."
혹시, 생일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은 그때문이 아니었을까?
생일을 알려줌으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자신이 무서워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니 아름이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선물하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고 했던 적이 있던 것 같다.
마음이 무겁다.
"...내 탓이 아냐"
윤영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는 나에게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래 네 탓도 아니고 아름이 탓도 아니지,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잘한 것도 아냐.
변명하려하지도 말고, 사과하지도 마.
변명도, 사과도 다 너 자신을 위한 거지 결코 아름이를 위한 행동은 아냐.
그냥 그래."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또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비..많이 온다.."
내 말에 윤영이는 창가를 바라본다.
"그러게. 그때도 비 이렇게 많이 왔었는데. 기분 묘하군."
"걔 죽은 날?"
윤영이가 황당하다는 듯이 날 바라본다.
"너 고딩 때 그날 까먹었냐?"
"응? 뭐였지?"
질렸다는 듯이 윤영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몰라. 알아서 생각해봐. 넌 정말이지 악의 없이 잔인하다니까."
윤영이는 뒤에 약속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커피숍에서 나와 헤어졌다.
쏟아지는 비가 내가 든 우산을 두드린다. 고개를 숙이고 찰박거리며 집을 향해 걸어간다.
눈앞에 떨어지는 수많은 빗방울들이 흐릿하게 보이며 소리도 멀어져간다.
그렇게 멍하니,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온통 아름이 생각뿐이다.
혼자인 것이 힘들었겠지만 그 성격에 남에게 기대거나 먼저 연락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연락이 끊겼다는 것 자체가 친구들은 자신을 생각하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고 혼자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죽네 사네하며 사귀어온 친구들이 졸업을 하자마자 연락조차 없이 3년차에 접어들다니 매정하기도 했을 것이다.
내게 있어서 친구란 멀어도 다시 보면 반가운 존재고, 한번 친구면 영원히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었지만 아름이에게는 그렇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항상 지켜봐주고 따듯한 인사를 건네야했을지도 모른다. 아름이와 3년을 함께 지내면서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름이는 나의 그런 태도를 탓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내 탓만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따지면 졸업한 후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던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태어남을 축하받아야 하는 날 할머니의 빈자리에서 혼자 남았다는 상실감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우리들에게 꽃다발을 주었는지, 또 왜 죽었는지 난 알 수 없다.
하지만 윤영이와 얘기하면서 나는 하나 둘 내가 몰랐던, 아니, 내가 잊어버렸던 아름이를 하나 둘 기억 해낼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할 무렵, 비가 쏟아지는 골목길과 우산 속에서 난 윤영이가 말했던 그것을 기억해냈다.
비가 올 때 우리 셋은 같은 우산을 쓴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지말자고, 평생 함께하자고.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들이라며 우리들의 관계를 과시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까지 생각났다.
그 얘기를 꺼낸 것은 나였다.
그리고 가장 먼저 잊어버린 것 또한 나였다.
아찔한 마음에 후회가 밀려왔다. 그 말에 행복한 듯 밝게 웃었던 아름이의 얼굴까지 모두 기억나버렸다.
그 때 아름이는 무슨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들었을까. 순간 오한이 든다.
물론 난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쏟아져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꽃다발을 안고 달려오는 내내 이때의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라면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때의 약속을.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또 다른 아픔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늦었지만, 왜 좀 더 일찍 알지 못 했는가 후회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때의 친구관계는 보통 이렇게 되기 마련이고, 단지 우리 세 사람의 관계가 좀 더 특이해진 이유는 그녀가 자살했기 때문이다.
항상 죽네 사네를 외치며 함께 해 온 집단의 친구들을 우리는 그 집단을 벗어나면 쉽게 잊는다. 그것을 '잊는다' 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잊혀졌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차지만, 그러한 타인도 있다는 것, 그 사실은 그 사람의 생각대로 변해주진 않는다.
흠뻑 젖은 우산을 현관 밖에 세워두고 현관문에서 신발을 벗었다. 그리곤 그대로 멍하니 서있었다. 집안에 비가 내릴 리 없는데도 마치 장대비를 두들겨 맞고있는 것만 같다.
몸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만 같았다. 추웠다.
어두컴컴한 거실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구름 낀 하늘 아래에서 색을 잃은 듯 모두가 회색빛이다. 그 와중에 눈언저리를 간지럽히는 붉은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꽃이었다.
지난 주 아름이가 줬던 붉은 꽃.
터덜터덜 꽃병 쪽으로 걸어간 나는 아무생각 없이 꽃잎들을 만졌다.
일주일이 지나 활짝 핀 붉은 꽃들은 아주 보드라웠다.
하나..둘...셋....열.......스물....스물 둘.
스물 두 송이.
혹시 이 꽃다발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신을 위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이 꽃다발로 만들어진, 사랑했던 사람들의 미소 말이다.
그때 꽃을 건네주던 아름이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못 잊을 것 같다. 평생.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도, 후회하는 것도,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저...
"생일 축하해."
자문자답이라도 하는듯한 스스로의 모습이 씁쓸해서 웃음이 나온다.
이런 내 말에 너는 웃어줄까.